R&D 예타 폐지, 기회와 책임의 갈림길에 선 연구개발계

제22대 국회를 통해 국가연구개발(R&D)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2025년 7월 7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연구개발 사업의 적시성과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움직임은 윤석열 정권에서도 있었습니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R&D 분야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폐지를 위한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에 대한 개정안은 2024년 12월 10일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습니다.

과학 및 산업기술 분야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정책 변화가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과학기술계에 전례 없는 자율성과 함께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에서 각각 제시한 두 법안을 중심으로 이 중대한 변화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조망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최근 이에 대해서 우리 연구개발 종사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두 개의 법안, 하나의 목표

최근 논의되는 두 법안은 ‘R&D 예타 폐지’라는 목표는 공유하지만, 그 접근법과 철학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이 다른가: '효율적 관리' vs. '안정적 투자'

두 법안의 근본적인 차이는 문제 진단과 해법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R&D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필자의 생각: 무엇이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가

연구개발의 기획 및 관리에서 신속성, 유연성, 그리고 일관성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연구개발은 최종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어렵고, 꾸준히 나아가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연구개발의 방향과 활용 가능한 자원의 일관성은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안보다는 황정아 의원의 안이 연구개발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속성과 유연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행정 절차의 간소화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전문가 집단은 그 안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며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안은 국가 행정부가 '관리'를 더 잘하겠다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황정아 의원의 안은 국가가 'R&D 예산 5%'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즉 범위를 한정해주되, 그 안에서는 전문가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이 법안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이전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하고 무거운 숙제를 남깁니다. 자율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엄중한 책임, 환골탈태의 기로에 서서

기술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입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명심해야 할 것은 국가의 자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국가 전체의 발전을 견인해야 한다는, 과학/기술/산업계에 주어진 무거운 사회적 책무를 의미합니다.

지난 정권에서 R&D 카르텔 이야기가 나올 때, 성실하게 현장에서 일하던 종사자들은 분노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 분야에 대한 불신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제 과학기술계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기술패권의 흐름을 읽고, 개별 분야의 경계를 넘어 국가경쟁력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전 산업을 아우르는 넓은 시각을 갖추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전문성을 키우고, 국민의 세금을 R&D에 투입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하는,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번 제도 변화가 진정한 도약의 발판이 될지는, 전적으로 과학기술계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